미각, 스시에 빠지다
장인정신과 자연경외가 빚어내는 맛의 진미. 세세한 조리법에 극심한 신경을 쓴 섬세한 맛. 하지만 230알의 밥에 11~12g의 회만 올라간 단순한 구성. 세계 미식가의 미각을 홀리는 초밥을 이르는 말이다. 섬세한 조리법이지만 단순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초밥. 초밥은 장인을 만들었고 장인은 초밥을 만든다. 그러던 그들만의 초밥이 섬나라를 벗어나 세계인의 입맛을 녹이고 있다. 이제 초밥으로 인해 미식가의 기준도 초밥을 즐기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져야 할 판이다.
음식의 맛은 재료와 양념에서 나온다. 초밥을 맛의 정점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바로 재료와 양념의 조화가 극히 섬세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성으로 준비한 재료에 장인의 손길이 닿으면 단순한 음식이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다.
미식으로 즐기기에 초밥만한 게 없을 정도이지만 만드는 과정은 세세하기 이를 데 없다. 쌀과 물의 선택을 필두로 맛이 최고조에 달한 제철재료를 찾아야 한다. 일본인은 제철 재료의 시기를 짧으면 1주일뿐이라고 여긴다. 이런 엄격함을 기본으로 오랜 장인의 손맛이 가미된 양념에 정확한 칼질로 재료의 맛을 뽑아낸다. 감각적인 손놀림으로 밥을 쥐어, 단숨에 재료를 얹어 손님의 눈앞에 놓는 건 쉽지 않은 표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초밥은 일본요리의 특성인 섬세함과 단순함을 절정으로 담고 있다. 온도가 죽으면 맛도 죽는 게 초밥. 그렇기에 초밥은 여러 개가 담겨지지 않고 한 개씩 독립되어 나온다. 어떻게 보면 초밥이야말로 일본인의 기질인 개인주의를 잘 보여주는 음식이 아닌가 싶다.
제철재료가 풍부하게 있는 초밥전문점
청담동 골목 어디메쯤 자리 잡고 있는 초밥전문점 무라타. 신라호텔 일식당 조리장 출신이 작년 시월경에 차린 집이다. 때문인지 요즘 한창 뜨고 있다는 소문인데. 며칠 전 모 블로거의 점심초대를 받아 찾아가 봤다. 조리장은 선약 손님을 맞는 관계로 직접 쥔 초밥을 맛보지 못한 게 살짝 아쉽다. 대신 초밥경력 15년차에 접어든 부조리장이 쥐어준 걸로 위안을 삼았다.
에피타이저로 마를 갈아 참치회 위에 얹어 나왔다
조리사 앞에 자리를 잡고 앉자 청담동 특유의 세련미가 돋보이는 실내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온다. 심플함과 단순함이 마치 초밥을 닮은 듯하다. 품위가 떨어지지 않는 테이블 세팅은 초밥의 가치를 높여준다.
일단 아사히생맥주 한 잔 부터 찾았다. 곧이어 광어초밥이 올라온다. 밥알의 개수가 적어서 그런지 입안을 간지럽히다 사라진다.
맛객이 초밥을 손으로 집는 것을 보았는지 물수건이 있음에도 또 다른 위생물수건이 놓여진다. 음식점만큼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통용되는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심리적인 맛을 채워주니 초밥의 맛도 올라가는 건 당연지사.
연이어 방어, 도미가 올라온다. 제주도 연안에서 잡힌 제주도 생참치의 여든여든 한 식감이란. 숙성을 통해 만들어진 산미가 맛을 돋군다. 전복을 쪄 올린 초밥은 참 보드랍기만 하다.
중간쯤 가자 재첩이 들어간 아카 미소국이 나온다. 약간 달달한 느낌이 일본스럽다. 하긴, 미소 자체가 일본 거니까.
제철에 난 모든 재료는 초밥의 재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함일까? 갯가재도 올라온다. 일부지역에서는 ‘쏙’ ‘쏘기’ ‘딱게’ ‘썰게’ 로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약간 짭짜름함이 감돈다.
한치에 칼집을 내 소스를 뿌리고 성게알을 올린 초밥은 그동안 나온 것 중에서 가장 기교를 부렸다. 때문인지 한층 복잡한 맛이다. 성게의 향은 송이의 향과 견줄 만하다.
또 다시 올라온 초밥, 병어다. 병어초밥이라니.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일격을 당한 느낌이다.
“병어초밥은 여기서 개발한 겁니까?”
“개발이 아니구요. 지금이 철이니까요. 철 생선이 제일 맛있어요.”
맞는 얘기다. 초밥을 먹는 재미중 하나가 바로 제철재료를 즐긴다는 데 있잖은가. 맛객이 롤초밥을 싫어하는 이유도 제철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병어가 맛있는 생선인데 너무 천대받고 있어요.”
그래서 조리사가 필요한 게 아니겠는가. 평범함 재료에서 극 상의 맛을 뽑아내는 능력. 재료를 결합해 최상의 맛의 조합을 이루는 게 요리사이다. 요리사가 재료를 이용해 맛을 표현하고 그 표현이 창의적인 완성도를 보일 때 우리는 감동을 받는다. 감동은 곧 예술이기도 하다. 병어 특유의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맛객은 왜 병어가 초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을까.
피조개는 맛객이 선호하는 재료이다. 쫄깃거리는 식감과 부드러운 밥의 조화. 밥의 단맛과 피조개 짭쪼름함의 조화. 누구인지 모르지만 처음 밥 위에 피조개를 올린 당신을 경외하리라.
피조개초밥이 야성의 식감이라면 단새우는 야성을 모두 죽인 식감이다. 온전하게 이에 순응하는 차진 식감은 단새우를 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어알의 탐스러움이란. 불의 핵을 닮은 선명한 색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톡톡 터질 때의 느낌은 뭐랄까?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충격방지 비닐을 터뜨리는 재미랄까.
이쯤에서 맛보기를 멈추었어야 했다. 식대가 만만찮게 나왔다. 런치메뉴 가격이 고정되어 있는 걸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바에 앉으면 초밥이 각각 가격이 매겨진다고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주는 대로 먹었으니 쯧쯧! 그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내가 선호하는 재료를 쥐어달라고 했을 텐데 말이다.
주꾸미(쭈꾸미)도 이 봄에 제철이다. 불에 살짝 구웠는데 탄맛과 쓴맛이 섬세함을 떨어뜨린다. 그리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는 재료이다.
흰살 생선을 갈아서 경단을 띄운 맑은 국. 속이 확 풀린다. 해장으로도 아주 좋겠다는 생각이다.
학공치는 한때 고급 일식재료여서 그런지 조리사들이 기교를 부리는 대표적인 초밥 재료이다. 하지만 이곳은 기교를 절제했다. 미식을 즐긴 후 말했다.
“초밥에 기교를 부리기보다 제철 재료의 맛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네요.”
“초밥에 기교를 부리면 안 됩니다.”
가장 맛없는 초밥은 조잡하게 쥔 것이다. 초밥이 왜 세련미가 있어야 하는지 조잡한 초밥이 대변해주고 있다. 조리사는 세련미를 내기 위해 곧 기교의 유혹에 빠져 들기 쉽다. 기교가 지나치다 보면 화려해진다. 화려함은 식상해지기 쉽고 조잡함과도 맥을 같이한다. 그래,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수많은 예술작품에서 보듯 최고의 기교는 단순미라는 사실. 이는 곧 기교가 최고의 세련미를 뜻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요리 명인들의 요리가 이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살짝 구운 새우초밥. 새우는 익히면 육질이 더욱 쫄깃해진다. 생새우의 차진 식감과는 또 다른 맛이다.
참치를 파와 함께 다져 만들었다. 간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하고 간장을 찍지 않은 게 실수다. 밋밋하기만 하다. 이날의 초밥 중 가장 지우고 싶은 맛이기도 하다. 어쩌면 초밥에서 김을 싫어하는 나의 성향이 개입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의 풍미는 강렬해 나머지 재료의 풍미를 느끼는데 방해가 된다.
장어초밥이다. 맛객의 초밥 취향은 날생선 위주이다. 하지만 익힌 장어만큼은 좋다. 껍질부터 구워 찜통에 찐 이놈은 입에 들어가기 무섭게 부드럽게 흐트러진다. 만들기 쉽지 않은 재료라 못하는 집에서는 거들 떠 보지도 않는 재료이기도 하다. 이제 초밥의 향연도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달걀말이를 마지막으로 우동으로 넘어갔다.
조미료를 일절 첨가하지 않고 자연재료만으로 뽑은 국물 맛이 개운하지 않을 수 없다. 최상의 초밥 맛은 아니지만 맛이 최고조에 달한 제철재료가 풍부하게 있어 좋은 집. 금전적인 부담만 아니라면 가끔 맛을 느껴보련만. (2008.4.15 맛객)
MURATA(무라타) 02)3445-7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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