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이야기

[스크랩] 신념의 크기가 달랐다 - 3

다이스 선장 2011. 4. 14. 23:13

   오자서가 죽고 백비가 승상이 되었다. 이로부터 4년 후 오왕이 중원의 제후들과 회맹을 위해 오나라의 핵심 전력을 모두 데리고 떠났다. 오나라 도성은 태자 우가 남아 지켰다. 오왕이 정예부대를 모두 동원해 중원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구천은 하늘이 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기원전 482년, 월왕 구천은 12년 전 오왕 부차에게 당한 패배를 설욕하기 위한 출정을 준비했다. 월나라에 대한 방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오나라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태자 우가 죽고 고소대는 불에 타 사라졌다. 오왕이 돌아와 월나라와 일전을 벌였으나 지치고 사기가 저하된 오나라가 십 수 년을 벼르고 벼른 월군을 당할 순 없었다. 오나라는 항복하고 화평을 청했다. 아직 오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 판단한 월나라가 화평을 받아들였다.

 

   나이 탓이었을까? 월나라가 화평을 받아들여 패망의 위기에서 벗어난 부차는 15년 전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반면 월나라는 오나라에 가할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원전 476년, 월나라가 마침내 군대를 일으켰다. 오나라도 군사를 동원해 일전을 벌였으나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이듬해 오나라 도성이 포위되었고 다시 이년 후 오나라 도성이 함락되었다. 궁지에 몰린 오왕은 월왕에게 사자를 보내 지난날 자신이 월왕에게 내렸던 벌을 받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자신이 월나라를 존속시켰듯이 오나라의 존립은 인정해 달라는 의미였다. 월왕이 측은한 생각이 들어 받아들이려 하자 범려가 말했다. “지난날 하늘이 월나라를 들어 오나라에 주었으나 오왕이 천명을 어기고 받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시 하늘이 오나라를 들어 월나라에 주려하고 있습니다. 어찌 천명을 어기려 하십니까? 지난 20년 세월의 고난이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월왕 구천이 부차에게 사자를 보내 100호의 식읍을 줄 테니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라고 했다. 절망에 빠진 부차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선친인 합려의 성과를 이어 중원의 패자인 진(晉)나라와 패권을 다툴 정도로 마지막까지 국제사회의 강자로 군림하다 하루아침에 신흥 국가인 월나라에 의해 나라를 망치고 만 부차가 죽음을 결심하고 떠올린 사람은 합려도 서시도 백비도 아닌 오자서였다. “죽어 오자서를 대할 면목이 없다. 죽거든 내 눈을 가려다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두 주인공인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 거친 잠자리에 누워 자고(臥薪), 곰의 쓸개를 핥으며(嘗膽) 서로에 대한 복수의 결기를 다졌던 두 사람,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구천이 되었다. 궁전 뜰에 시자를 세워 놓고 자신이 지날 때마다 “부차야 구천이 아비 죽인 사실을 잊었느냐?”라고 외치게 해 혹시라도 복수에 대한 집념이 무뎌질까 경계했던 오왕도 2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각고했던 월왕에겐 미치지 못했다.

 

   오나라와 월나라가 중국의 동남쪽에서 와신상담하던 동시대에 유럽의 동남쪽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당한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한 왕이 있었다. 1, 2차 페르시아 전쟁의 주인공인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도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에 당한 패배를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저녁 식사하기 전 하인들을 시켜 “왕이시여! 아테네에 당한 패배를 잊지 마소서!”라고 말하게 했다고 한다.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다리우스왕은 당대에 설욕의 기회를 갖진 못했지만 아들인 크세르크세스왕이 벌인 3차 페르시아 전쟁을 저승에서나마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나 2차 페르시아 전쟁이 마라톤 전투를 남겼다면 3차 폐르시아 전쟁은 테르모필라이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을 세계 전쟁사에 남겨놓고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오나라를 합병하고 오나라 궁궐에서 신하들의 조례를 받는 월왕 구천의 심정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천하를 얻었다 한들 이보다 더했을까? 그러나 이 극적인 상황에서 구천은 백비와 그 일족을 도륙 냄으로써 훗날에 대한 경계로 삼았다. 또한 백비를 죽인 일이 충신 오자서를 위한 복수였다는 멘트를 달아 역시 훗날에 대한 모범으로 삼는 일도 잊지 않았다.

 

   여세를 몰아 구천은 중원의 제, 진, 송, 노나라와 회맹을 맺고 제, 진, 초, 오에 이어 춘추 다섯 번째 패권을 확립하게 된다. 나아가 초, 노나라에 오나라의 옛 땅을 떼어 주고 송나라엔 지난 날 오나라가 빼앗은 땅을 돌려주었다. 이로서 모든 나라는 월나라의 패권을 경원했다.

 

   패망의 위기를 딛고 일약 패권국가가 된 월, 그 중심에 있었던 범려가 돌발행동을 한다. 고난의 20년 세월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월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잠적했다. 월나라 부흥의 또 다른 한 축이었던 문종에게 한 장 편지를 남긴 채.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고 했소. 월왕 구천은 고난을 함께할 수는 있어도 영화는 함께 하지 못할 관상을 가지고 있소. 그대가 월에 머물러 있다면 언젠가는 그로 인해 화를 입게 될 것이니 하루 빨리 월왕 곁을 떠나 일신의 안녕을 구하시오.”

 

   문종은 범려의 말을 반만 따랐다. 병을 이유로 은퇴했지만 월왕의 가시권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오나라라는 공적을 제거하고 난 뒤 문종이라는 뛰어난 역량을 지닌 신하는 월왕에게 있어서 오히려 위협으로 다가왔다. 문종을 병문안한 구천이 칼을 풀어놓고 나왔다. 오왕 부차가 오자서에게 보낸 촉루검이었다. 오자서가 그랬듯이 문종도 칼을 물고 엎어졌다.

 

   20년 세월을 오직 나라를 위해 권토중래했던 문종은 결국 토사구팽의 전형으로 남게 되었다. 오나라가 망하고 채 사년이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한 문종, 한 나라를 멸망시킬 일곱 가지 계책 중 세 가지만을 써서 오나라를 멸망시켰다는 그는 남아있는 네 가지 계책으로 인해 월왕의 두려움을 사 결국 자신을 망치고 만다. 한 나라를 망칠 일곱 가지 계책도 결국 한 몸 보호할 계책은 되지 못했다. 그로부터 다시 오년 후 월왕 구천도 일생의 영욕을 뒤로하고 죽음을 맞는다.

출처 : 춘추의 창으로 세상을 읽다
글쓴이 : 풀이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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