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첫 출간 이후 일본지식인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준 상처의 기록,
밝혀지지 않았던 진실의 역사
“이 책은 이른바 한일유착의 시초가 된 ‘한일조약’체결(1965년)을 강행하려는 긴박한 정세 속에서 출판됐고, 나는 그 조약 체결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이 책을 썼다. 지금은 당시와는 정치 상황이 크게 달라졌지만, 조선 민족에게나 일본 국민에게나 일제의 조선 지배 정책에 대한 규명은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며 그 사상적 근원은 한층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최근 조선인 강제연행에 대한 조사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고 그것에 관한 저서도 나와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이 책에 대한 요청이 이어지고 있기에 증쇄하게 되었다.” -박경식(1978년 1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한일협정이 맺어진 해, 재일사학자 박경식은 식민지 시절에 대한 명확한 사죄 없이, 강제연행 등에 대한 배상을 제대로 합의하지 않고 ‘한일조약’ 체결을 진행하는 한일 양국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또한 이런 어려운 정세 속에서 재일조선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을 썼다. 당시 일본 미래사未來社에서 출간한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朝鮮人强制連行の記錄>은 아직 식민 시대 조선인의 강제연행 사실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던 때, 강제연행된 조선인들의 학살현장을 찾아다니고, 각종 문서와 조선인 징용자, 목격자를 인터뷰하여 정리한 것으로 광산채굴과 산림벌목, 각종 빌딩 건설 및 군수산업에 혹사당한 조선인들이 식민지 노예로서 얼마나 비참한 상황에 처했었는지, 어떻게 강제연행될 수밖에 없었는지, 또한 해방 후 어떤 차별 대우를 받았는지에 대한 실상을 낱낱이 공개한다.
일제시대 강제징용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라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그동안 잊고 있던 강제연행의 만행을 고발함으로써, 재일동포들이 ‘왜 일본에 갈 수밖에 없었으며, 차별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으며, 식민 시대 만행을 저지른 일본과 재일조선인 문제의 심각성을 못 느끼는 일본인들에게는 ‘무엇이 잘못되었고, 왜 반성해야 하는가?’하는 양심의 문제를 지적한다.
“나는 재일조선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을 걸어왔는지 알리기 위해, 특히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 강제 연행 문제를 통해 제국주의 침략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또 재일조선인의 민주주의적 민족 권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제국주의 침략자의 사상적 잔재를 청산하고 조선과 일본의 우호친선과 진정으로 평등한 국제 연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박경식(1965년 5월)
재일조선인 사회의 정신적 거목 박경식, 그가 평생에 걸쳐 몰두한 일
일본에서 더 유명한 박경식은 강제연행에 대한 연구로 주목을 받았다. 1922년 경북 봉화군의 가난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여섯 살 때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고학으로 42년 초등교원 자격을 취득한 ...
1965년 첫 출간 이후 일본지식인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준 상처의 기록,
밝혀지지 않았던 진실의 역사
“이 책은 이른바 한일유착의 시초가 된 ‘한일조약’체결(1965년)을 강행하려는 긴박한 정세 속에서 출판됐고, 나는 그 조약 체결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이 책을 썼다. 지금은 당시와는 정치 상황이 크게 달라졌지만, 조선 민족에게나 일본 국민에게나 일제의 조선 지배 정책에 대한 규명은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며 그 사상적 근원은 한층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최근 조선인 강제연행에 대한 조사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고 그것에 관한 저서도 나와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이 책에 대한 요청이 이어지고 있기에 증쇄하게 되었다.” -박경식(1978년 1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한일협정이 맺어진 해, 재일사학자 박경식은 식민지 시절에 대한 명확한 사죄 없이, 강제연행 등에 대한 배상을 제대로 합의하지 않고 ‘한일조약’ 체결을 진행하는 한일 양국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또한 이런 어려운 정세 속에서 재일조선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을 썼다. 당시 일본 미래사未來社에서 출간한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朝鮮人强制連行の記錄>은 아직 식민 시대 조선인의 강제연행 사실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던 때, 강제연행된 조선인들의 학살현장을 찾아다니고, 각종 문서와 조선인 징용자, 목격자를 인터뷰하여 정리한 것으로 광산채굴과 산림벌목, 각종 빌딩 건설 및 군수산업에 혹사당한 조선인들이 식민지 노예로서 얼마나 비참한 상황에 처했었는지, 어떻게 강제연행될 수밖에 없었는지, 또한 해방 후 어떤 차별 대우를 받았는지에 대한 실상을 낱낱이 공개한다.
일제시대 강제징용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라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그동안 잊고 있던 강제연행의 만행을 고발함으로써, 재일동포들이 ‘왜 일본에 갈 수밖에 없었으며, 차별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으며, 식민 시대 만행을 저지른 일본과 재일조선인 문제의 심각성을 못 느끼는 일본인들에게는 ‘무엇이 잘못되었고, 왜 반성해야 하는가?’하는 양심의 문제를 지적한다.
“나는 재일조선인이 얼마나 험난한 길을 걸어왔는지 알리기 위해, 특히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 강제 연행 문제를 통해 제국주의 침략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또 재일조선인의 민주주의적 민족 권리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제국주의 침략자의 사상적 잔재를 청산하고 조선과 일본의 우호친선과 진정으로 평등한 국제 연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박경식(1965년 5월)
재일조선인 사회의 정신적 거목 박경식, 그가 평생에 걸쳐 몰두한 일
일본에서 더 유명한 박경식은 강제연행에 대한 연구로 주목을 받았다. 1922년 경북 봉화군의 가난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여섯 살 때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고학으로 42년 초등교원 자격을 취득한 후 대용교원(준교원)으로 전전하다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늑막염을 심하게 앓았던 탓에 귀국길에 오른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남게 됐다. 이듬해 12월 미점령군 총사령부가 재일조선인 귀국 수송사업 중지명령을 내리면서 결국 일본에 잔류하게 된다. 귀국이 좌절되자 동양대 사학과에 편입, 날품팔이 등으로 학업을 마치고 조총련이 설립한 조선중?고 교사생활을 거쳐 조선대 교원으로 부임했지만,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이 분파주의로 비난받으면서 70년 학교를 휴직한다. 이후 조총련과 결별한 박경식은 왜곡된 재일조선사연구의 방향을 바로잡는 데 앞장선다. 자신은 헌책방을 운영하고 부인은 삯바느질을 할 만큼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40여 년에 걸쳐 일본 전역에서 엄청난 사료를 수집했다.
1976년 재일조선인 운동사연구회(기관지‘재일조선인연구’)를 결성한 후, 꾸준히 일본 전역에서 재일조선인뿐 아니라 일본인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연구회를 가졌으며 그 결과 재일조선인 문제를 다루는 일본 시민단체도 생기는 등 일본에 재일조선인 문제를 인식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1997년 일본에서 출간된 ‘근대일본사회운동사인물대사전’에 조선인 운동가 1,250명을 수록한 것도 그의 업적으로 꼽힌다. 평생 수집한 자료(1300박스 분량의 4만 점의 자료)는 일제시대 각종 사회통계와 운동상황, 지배정책 등을 망라한 것으로, 일본의 시가滋賀현립대학에 기증했다(시가현립대학에는 ‘박문고’라는 이름으로 박경식의 자료만을 모은 자료실이 따로 있다).
박경식은 해방 전후 일본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온몸으로 겪은 재일조선인 1세대로, 해방 후 눈뜬 민족적 자각을 계기로 평생 재일조선인의 민족 주체성 확립과 위상 정립에 혼신을 다했다. 재일동포 2, 3세를 위해 죽는 날까지 재일동포사를 기록한 역사자료관 건립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그는 그의 마지막 꿈을 이루지도 못하고 1998년 도쿄 자택 근처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고 만다.
많은 일본인은 일제의 죄악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것은 제국주의가 한 짓이지 자기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유태계 독일인 주부는 “많은 독일인이 이제 와서 ‘그 일은 나치가 한 일이다, 나는 나치가 싫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토록 나치를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또 설령 정말 나치를 반대했다고 하더라도, 독일인이라면 독일의 이름으로 한 행위에 대하여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 말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어야 한다. -본문 48p
‘일제 강제징용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일본서 출간한 지 43년 만에 정식 계약하여 한국에서 출간
‘철도의 침목 하나에 조선인 하나’라는 증언이 있을 정도로 혹사당하고서도, 종전 후에는 보상금은커녕 밀린 임금도 못 받았으며, 조국으로 귀국하지도 못한 채 아주 기본적인 생활도 보장 받지 못한 재일조선인들의 실상을 밝힌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은 출간 당시 일본지식인 사회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1965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출간된 이후 지금껏 쇄를 거듭하며 판매되고 있다. 또한 이 책의 출간은 많은 재일조선인사 연구의 시발점이 되었고, 일제 재일조선인사의 학문적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의의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에선 출판되지 않고 있다가, 책이 나온 지 43년 만에 처음으로 정식 계약하여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일본에서 한류열풍이 불고 한국과 일본은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걷고 있는 듯하지만, 분명 양국 간엔 청산되지 않은 역사가 존재한다.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이 그 증거이며, 이는 일본과 한국 모두 간과해선 안 될 문제이다. 이 책의 한국어판 출간으로 잊힌 역사와 재일동포를 기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길 바란다.